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문단 편집) === 의혹 제기와 재조사 ===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고, 아무리 봐도 내세울 게 없던 윤태식이 갑작스럽게 벤처 사업가로 잘 나가는 것을 보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결국 2000년 [[주간동아]]에서 [[이정훈(언론인 및 유튜버)]] 기자가 처음으로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이정훈(언론인 및 유튜버)]] 기자는 1994년 [[주간조선]]에 근무할 당시 부장으로부터 이 사건을 전달받은 뒤 당시 싱가포르 대사였던 이장춘 대사[* 이 때는 필리핀으로 전근을 간 상태였다.]와 국제전화로 통화를 하고 수지 김의 유족들을 만나면서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단 당시에는 아직 안기부의 힘이 막강한지라 기사가 나가지 못했고, 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보도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2001년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을 수상했다. 본상은 [[한국일보]]의 이용호 게이트 특종.] 또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자세히 취재하여 방송했다.[* 최초 방송은 2000년 2월이었지만 국정원의 방해에 윤태식 본인의 방송중지 가처분 신청까지 겹쳐 결국 상당수 장면을 자르고 윤태식의 이름도 문○○이라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이후 검찰의 재수사에 의해 윤태식이 구속된 후인 2001년 11월에 와서야 완전판을 방송할 수 있었다.] [YouTube(We-ZTBYII2U)] 수지 김의 유족들은 간첩 누명 자체는 정권 차원에서 조작된 거니 당장 어찌할 수 없다고 쳐도 최소한 윤태식의 살인행위만큼은 사전에 알고 있었으니 감옥으로 보내졌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방송 등을 통해 윤태식이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았다는 것을 알게 된 유족들이 분노해 검찰에 수사 요청을 했지만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전해철]][*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자 제3대 [[행정안전부장관]]이었다.]이 유족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아 노력한 끝에 그 과정에 안기부의 압력과 방해 공작이 있다는 의혹 등 모든 진실이 결국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이 때 국정원과 윤태식, 그리고 정치권의 커넥션이 폭로되었다. 국정원은 윤태식을 철저하게 입단속시켰으며 1991년부터 윤태식의 출국을 금지하고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고, 윤태식도 이를 이용해 잘 먹고 잘 살았을 뿐 아니라 벤처열풍을 틈 타 패스21 주식을 여러 국회의원들, 그리고 언론 각계 인사들에게 뿌려대며 로비를 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윤태식 게이트가 나왔을 때 일부 언론에서 이상할 정도로 물흐리기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벤처 3대 게이트에 번외로 들어가기도 하는 '윤태식 게이트'라는 [[헬게이트]]를 소환했다. 이 때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이후 공소시효 만료를 50일 남겨두고 간신히 윤태식을 구속한 검찰은 [[홍콩 경무처|홍콩 경찰]]들에게서 받은[* 이는 한국 사법사상 최초 국제공조 사례다.] 수사자료를 토대로 윤태식이 살인범이자 사기꾼이며 여기에 국가 기관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이때 윤태식은 자신이 김옥분을 우발적으로 죽였다며 폭행치사를 주장했다. 왜냐면 폭행치사는 공소시효가 7년이라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살인으로 기소했기 때문에 윤태식의 주장을 무시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여한 공직자들은 한 집안 사람들 모두의 인생을 망쳐 놓고도 공소시효가 매우 짧은 현행법 때문에 처벌은커녕 재판조차 받지 않았고 분노한 유족들은 국가와 윤태식, 그리고 장세동을 비롯한 과거 국정원 고위관계자들에게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죄질이 너무 나쁜 데다 반성도 안 하고 있으니[* 본인은 '자신은 오래전에 뉘우치고 후회했으며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들에게 사과하려 했으나 당시 안기부가 막았고 수지 김의 오빠와 만나 모든 걸 털어놓으려 했는데 도청당해서 도중에 안기부에게 납치되어서 고문까지 받았고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의 주장일 뿐 근거는 없다. 윤태식은 2003년 5월 6일, 법정에 전문 감정인으로 출석해 홍콩 경찰이 보내온 부검 보고서에 대한 인정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유죄 판결이 나는 것에 기여한 법의학자 이정빈 서울대 교수에게 협박 편지를 보냈으며, 2012년에도 이정빈 교수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21101/50535297/2|#]]] 중형을 받아 마땅하다'''며 윤태식에게 살인죄로 12년, 기타 비리로 징역 3년 6개월 등 징역 15년 6개월을 선고[* 죄질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형량이 낮아 유가족 및 네티즌들이 강하게 비판했다.]했으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02547|국가가 유족들에게 42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이 당시 국가배상 청구 시효는 지나 버렸지만 유족들의 변호인을 맡은 전해철 변호사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안기부가 스스로 저지른 범죄에 소멸시효를 대는 것은 신의 성실 원칙에 어긋난다'라는 논리로 싸워 이겼다. 그리고 이 판결로 인해 그 이후 공안 사건의 무고한 피해자들도 국가배상금을 받았다.] 이 배상금 액수는 당시 정부가 배상한 손해배상 사건 중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큰 금액이다. 그리고 국가도 장세동을 비롯한 안기부 간부들과 윤태식에게 구상권을 행사했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023790|결국 대법원은 장세동에게 9억, 윤태식에게 4억 5천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윤태식의 재산은 이미 공중분해되었고, 장세동은 이미 시가 8억 원대의 빌라를 처분하는 등 재산을 빼돌린 뒤였다. 현재까지도 아직 남은 구상금 6억여원을 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수지 김 사건은 단순한 실수’라는 등 반성보다는 합리화하기에 바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00017382|장세동 재산, 없나? 숨겼나?]] 물론 이 돈을 다 받았다 해도 유족들이 그동안 받아온 모욕과 고통이 위로될 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유족들은 재조사 이후에야 수지 김이 묻힌 곳을 홍콩 현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해를 수습할 수는 없었는데, 홍콩 당국에서 무연고자 시신으로 처리해서 다른 무연고자 시신들과 함께 한 곳에 모아서 묘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묘지의 흙을 고향으로 가져와서 고인의 어머니의 묘지에 뿌렸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